영화 계춘할망, 무조건적인 할머니의 사랑

계춘할망

12년 전 잃어버린 손녀

홍계춘 할머니는 제주도에서 물질하며 해녀로 살아왔습니다. 세상을 떠난 아들 대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녀 혜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와 혜지는 서울의 시장에 들릅니다. 혜지는 할머니 옆에 꼭 붙어 따라다니며 시장을 구경합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혜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손녀를 잃어버리고 어느덧 12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재회한 할머니와 손녀

혜지는 그동안 거리에서 방황하며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혜지에게는 가족과도 같은 친구 민희가 있습니다. 민희가 나쁜 무리들로부터 조건만남을 강요받게 됩니다. 이를 본 혜지는 민희 대신 나섭니다. 성을 매수하려던 남자와 실랑이 끝에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발생합니다. 겁에 질린 이들은 도망칩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혜지는 어두운 구석에 앉아 끼니를 때웁니다. 그때 마시던 우유에 붙은 미아 찾기 광고를 보게 됩니다. 한편 할머니는 언제쯤 잃어버린 손녀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할머니는 손녀를 찾는 벽보를 매만지며 눈물짓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혜지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할머니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손녀를 만나 기쁨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혜지는 잃어버린 시간 때문인지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합니다. 손녀를 되찾은 할머니는 동네에서 축제를 벌입니다. 이번 생에서는 못 보고 가나 싶어 우울했던 할머니는 돌아온 손녀 덕분에 행복해합니다. 혜지는 할머니 집으로 와 어린 시절의 흔적들을 살펴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합니다. 할머니는 그동안 보살펴주지 못한 손녀에게 아낌없이 채워주려 합니다. 혜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미술반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학교생활에서도 마음을 잡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위태로운 생활을 해왔던 혜지는 반항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혜지에게 미술 선생님은 미술실에 남아 그림을 완성하라는 벌을 내립니다. 하교 시간이 다 되도록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혜지는 포기하고 미술실을 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그때 과거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가족을 잃고 힘들었던 그녀를 위로해 준 건 그림이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그림에 대한 감정이 떠올라 발길을 멈춥니다. 그리곤 립스틱으로 도화지를 채우기 시작합니다. 혜지는 멋진 그림을 완성합니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준 할머니

혜지는 친구 민희를 붙잡아두고 돈을 요구하는 무리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돕기 위해 할머니의 통장을 훔치려 하지만 밀려오는 죄책감에 결국 포기합니다. 하지만 통장에 손대는 모습을 삼촌에게 들킵니다.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한 혜지에게 할머니는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할머니가 네 편 되어줄 테니 원하는 대로 살라.'라며 말합니다. 이후 할머니의 진심에 혜지도 마음을 열게 됩니다. 혜지는 할머니와 함께 물질하며 손녀와 할머니의 모습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혜지는 미술 선생님께 그림 실력도 인정받습니다. 이곳에서 점점 마음에 안정도 찾아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아빠라는 사람이 혜지를 찾아와 돈을 요구합니다. 결국 혜지는 할머니의 통장을 훔쳐 아빠에게 건넵니다. 그 시각 할머니와 혜지의 유전자 검사 결과도 나옵니다. 일치하지 않는 결과에 할머니는 검사 결과를 집어던지며 쓸데없는 짓이라 말합니다. 삼촌은 혜지가 할머니의 통장에 손을 댓 것을 일러바칩니다. 할머니는 그런 삼촌에게 화풀이하듯 역정을 냅니다. 할머니와 헤어진 날, 혜지를 데려간 사람은 친모였습니다. 친모는 재혼했고, 재혼한 남편에게도 은주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혜지는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살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습니다. 사망 보험금이 탐났던 은주의 아버지가 혜지를 자기 딸로 바꿔버렸습니다. 어릴 적 혜지에게 들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이용해 은주는 혜지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혜지가 맞느냐고 묻는 할머니에게 혜지는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이 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할머니는 치매까지 앓게 되고 갑자기 사라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은주는 할머니를 찾아 나섭니다. 어릴 적 혜지를 잃어버렸던 바로 그 시장에서 할머니를 발견합니다. 은주를 보며 '혜지'라고 부르는 할머니는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달라 말합니다. 은주는 그동안 할머니가 베풀어 준 사랑에 보답하고자 지극정성으로 할머니를 보살핍니다. 어느 날 은주는 할머니의 라디오에 녹음된 내용을 듣게 됩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한 할머니의 말에 은주는 숨죽여 오열합니다. 자신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할머니의 깊고 넓은 마음에 그저 눈물만 흘립니다. 할머니는 비로소 진짜 손녀가 된 은주의 품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위대한 할머니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영화 포스터만 봤을 때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할머니와 손녀가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쯤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무조건적인 할머니의 사랑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흔이 넘는 나이까지 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릴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할머니의 말과 행동들이 이제는 다 이해가 되어 더 그립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온전한 내 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또 영화 배경이 된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유채꽃과 푸른 바다, 제주도의 자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풍경이 영화 분위기와 잘 맞았습니다. 그동안 도시적인 이미지의 역할만 주로 해오던 윤여정 배우의 할머니 연기가 주목을 받았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윤여정이 보여주는 섬세하고 깊이 있는 감정연기에 여러 번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윤여정의 연기는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었습니다.